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십상시의 난 (문단 편집) === 하진의 최후 === 이러한 가운데 [[십상시]]도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십상시 장양의 양아들이 하 태후의 여동생과 결혼했는데, 장양이 양며느리에게 "입조하여 한 번이라도 다시 태후와 폐하의 안색을 뵙고 구덩이에 들어간다면(죽는다는 말)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하고 고개를 조아리며 눈물로 읍소하자 이 말은 곧 하 태후에게 전해졌고 감동한 하 태후가 십상시 전원을 복직시켰다. 이에 열이 뻗친 [[하진(삼국지)|하진]]은 태후에게 십상시를 모조리 죽이고, 삼서의 낭 중에서 사람을 뽑아 환관들의 거처를 지키고 감시할 것을 제안하려 하나 도리어 십상시는 태후의 조서라고 속여 '''하진을 궁궐로 불러들여서 죽여버린다.''' (189년 8월 25일) 다짜고짜 하진을 암살한다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은, 환관의 권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전등화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으면 하진을 쓰러뜨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주로 황제를 이용해서 외척들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는 방법을 썼다. 하진을 끔살시킨 직후 장양은 조서를 꾸며 전 태위 [[번릉]]을 사례교위로 삼고 소부 [[허상]]을 하남윤으로 삼았는데 상서가 이 조서를 읽고는 의심하면서 "청컨대 대장군이 오시면 함께 의논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하진의 머리를 상서에게 내던지며 "하진은 모반하여 이미 주벌했다." 라고 외치는 공포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그럼에도 하진 휘하의 세력 특히 실질적인 하진의 배후 조종자라고 봐도 무방한 [[원소(삼국지)|원소]] 등 청류파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십상시는 그래도 아직은 황제와 태후를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고 중앙에서의 영향력이 강하니, 이전처럼 황제의 명령으로 원소 등을 역적으로 선포하고 새로 관리들을 임명해 수도를 장악한다면 승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